[열린광장] 빛바랜 오욕
불교는 인간은 오욕(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을 지니고 산다고 풀이했다. 늙으면 이 오욕이 쪼그라지고 빛바래진다. 물욕, 은퇴한 사람은 사회보장 연금 이외에 수입이 없다. 명예욕, 내가 왕년에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자화자찬으로 끝난다. 식욕, 맛있는 음식이 없어 덜 먹는다. 수면욕, 초저녁에 한잠 자고나면 정신이 똘똘해져 만리장성을 쌓는다. 색욕, S라인이 뚜렷한 미녀가 앞을 지나가도 ‘소가 닭 보듯’ 한다.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욕이다. 먹는 것이 힘이다. 밥이 보약이다. 어떻게 하면 밥을 잘 먹을 수 있을까. 반찬이 좋아야 한다. 나는 은퇴하고 집에서 반찬 만들기를 시작했다. 구글 요리사에게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우리 집 밥상에 한 끼도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 물김치다. 좋은 배추를 사다가 잘라서 소금물에 절인다. 절이는 시간을 잘 조정한다. 약간 덜 절인 배추를 건져 씻어서 양념을 넣어 버무린다. 양념은 비방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 각자 양념을 만들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힌트를 준다. 고추 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빵도 만들어 먹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이스트를 넣고 두 번 발효해서 건포도를 넣고 스팀 냄비에 찐다. 산양 젖 가루를 넣어 빵을 만들어 보았다. 각양각색의 빵을 만들어보았다. 요즘은 실증이 나서 집에서 빵을 만들지 않는다. 시장에 맛있는 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맛있는 김치가 있으면 김치찌개는 자연히 만들게 된다. 콩나물과 두부만 넣으면 된다. 양파와 마늘 그리고 식물성 고기인 버섯도 넣는다. 요즘 새로운 메뉴가 등장했다. 찐 비트(홍당무), 보혈강장제와 시금치 무침과 시금치 된장국이다. 매운 풋고추를 넣고 만든 멸치 볶음도 빼놓지 않는다. 후식으로 새로 등장한 과일이 파파야다. 이 파파야는 혈당도 별로 올리지 않고 시원하고 맛있다. 멕시칸 마켓에 가서 방금 수입된 파파야 열 개를 카트에 넣으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러진다. 우리 아이들과 친지에게 파파야를 선물하면 모두 좋아한다. 아내가 3년 전 뇌졸중을 앓고 나서 내가 식모, 아니 식부가 되었다. 반찬 만드는데 익숙해졌다. 아내에게 삼시세끼 상을 차려준다. 지난 60년을 받아먹었으니 내 차례다. 새로 반찬을 만들어주면 맛있다고 덥석덥석 집어먹으면 좋으련만. 고양이 밥 먹듯 깨작거린다. 맛이 없다고 불평한다. 주먹으로 꿀밤을 주고 싶지만 참는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오욕 수면욕 색욕 물욕 명예욕 시금치 무침과